도구는 누구나 쓰는 시대, 저는 데이터가 흐르는 길을 만들기로 했어요
AI 덕분에 일이 편해졌다고들 하죠.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카피 초안은 금방 나오고 리포트 요약도 알아서 해줘요. 그런데 반복 업무 위주로 일하던 마케터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거예요. 빨라진 만큼, 맡은 일은 오히려 더 많아지지 않았나요?
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업무량도, 수준도 높아졌어요. 그 사이 채용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고요.
그러던 중 한 빅테크에 올라온 마테크(MarTech) 채용 공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요.
공고에 적힌 새로운 마케터
주요 업무를 옮겨보면 이래요.
- 반복적인 마케팅 업무의 시스템화 및 자동화 워크플로우 구축
- Braze 등 마케팅 툴 최적화 및 내부 시스템 연동 리딩
- 그로스 마케팅 효율을 위한 서비스 정의 및 기획
- 마케팅, PM, 개발 부서 간 기술적 커뮤니케이션
자격 요건에는 이런 문장도 있었어요. "수동 업무의 문제를 정의하고 시스템적으로 해결한 경험"
읽는데 좀 무서웠어요. 반복적이고 수동적인, 사람 손으로 굴러가던 일들을 이 직군이 하나씩 정리해 나갈 것 같았거든요. 막연하게 듣던 "AI가 마케터를 대체한다"는 말이 처음으로 현실감 있게 다가왔어요.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떠올랐어요. 평생 해온 일이 어느 날 갑자기 필요 없어지는 이야기요. 누구 잘못도 아닌데, 정말 어쩔 수가 없는 변화요.
ChatGPT가 있어도 달라지지 않았던 것
돌아보면 ChatGPT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마케터의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카피 쓰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데이터는 여전히 흩어져 있었거든요.
뭔가를 연결하려면 개발팀에 요청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인사이트가 보여도 실행은 개발 백로그 뒤에 줄을 서야 했죠.
지금은 마케터가 직접 해요
지금은 달라요. 개발팀에 요청하지 않아도 제가 직접 API를 호출해요. 에러 코드가 뜨면 직접 해석해서 트러블슈팅하고요. 대량의 마케팅 데이터도 직접 분석해요.
AI가 가져간 건 마케터의 일 자체라기보다 기다림이었어요.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마케터의 역할이 모호해지고 있어요. 어디까지가 마케터의 일이고 어디부터가 개발자의 일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중이에요.
툴은 바뀌어도 축은 바뀌지 않아요
경계가 흐려질수록 저는 반대로 변하지 않는 걸 찾게 됐어요.
마케팅 테크 씬에서 툴은 매년 바뀌어요. 그런데 데이터가 오가는 축은 늘 같아요.
Performance → Analytics → CRM → Revenue
유저를 데려오고, 제품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그걸 바탕으로 관계를 맺고, 결국 매출로 이어지는 흐름이에요. 광고 플랫폼이 바뀌어도, CRM 툴이 바뀌어도 이 네 축 사이로 데이터가 흐른다는 건 달라지지 않아요.
저는 영화 마지막 장면의 만수처럼 되기로 했어요
시대의 흐름은 서글퍼요. 그래도 저는 거기에 적극적으로 올라타려고 해요.
영화 마지막, 차가운 기계음만 들리는 텅 빈 공장을 홀로 지키는 만수처럼요. 사람 손으로 하던 반복 업무들이 하나둘 기계로 넘어간 자리에서, 그 시스템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는 걸 꿈꿔요.
그럼에도 마케터는 남아요
사라지는 건 마케터가 아니라 반복 업무만 하던 역할이에요. 남는 건 기획하는 마케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AI를 쓰는 시대거든요. 도구는 이미 충분히 고도화됐고, 이제는 누구나 AI를 활용해서 일정 수준 이상 다룰 수 있어요. 모두가 같은 무기를 든 셈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Back to Basic이에요.
모두가 AI를 이곳저곳에 휘두르고 있을 때, 마케터는 다시 우리 고객에게 집중해야 해요. 페르소나를 다시 살피고, 다시 정의하고, 더 깊이 탐구하면서요. 사람을 이해하려는 인문학적인 시선이 있어야 AI도 제대로 쓸 수 있으니까요. 결국엔 기획력이에요.
그런데 기획은 정확한 데이터 위에서만 설 수 있어요. 마케팅 데이터 거버넌스가 잘 잡혀 있고 데이터가 제대로 들어와야, 우리 유저를 정확히 분석하고 옳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마케팅 데이터 파이프라인 관리자가 되려고 해요. 기획하는 마케터들이 고객을 정확히 볼 수 있도록, 네 축 사이로 데이터가 제대로 흐르게 만드는 사람이요.
이 블로그에서는
이 블로그에서는 제가 배우고 느낀 것들을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 공유하려고 해요.
- Posts: 일상과 실무에서 발견한 마케팅 인사이트
- Projects: 직접 수행한 프로젝트 기록
- References: 잘 만든 캠페인을 뜯어보는 역기획
마무리하며
AI는 마케터의 기다림을 가져갔어요. 저는 그렇게 생긴 시간에 데이터가 흐르는 길을 지키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그 길이 탄탄해야 기획도 제대로 설 수 있으니까요.